2011.08.02 23:58

혀는 정직하지만: 《트루맛쇼》와 저널리즘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 거야 당연하지만, 사실 혀는 대체로 정직한 편이다. 기준점이 저마다 달라서 그렇지 혀의 관점에서는 어떤 음식이 맛이 있거나 아니면 없거나다. 물론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거나 '딱히 끌리지는 않는다' 같은 미적지근하고 우유부단한 관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맛있을 것 같다'거나 '먹음직스럽다' 또는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말은 적어도 혀의 관점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혀는 입 속에서 은밀하게 음식을 물고빨아야만 그 맛을 알 수 있으며, 그 이전의 모든 예상과 추측은 눈과 코의 모사謀事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눈은 가장 직관적이고 강력해서 누구나 신뢰하는 모사謀士다. 그리고 2011년 한국에는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문제는 그 눈이 사실은 못 미더운 녀석이며, 텔레비전은 더더욱 미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대다수의 시청자들과 달리, 방송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는 점이다.

김재환 감독의 영화 《트루맛쇼》를 보면서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참 재미 없게도 알레고리였다: '맛집 프로그램이 만약 뉴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방송이 이미 미디어이니 알레고리치고도 참 최하급 알레고리지만, 원래 마지레스형 인간인 나는 자못 심각했다.

트루맛쇼
감독 김재환 (2011 / 한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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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두어 해 전, 사회부 사건팀 수습기자 시절의 일이다. 사람 대접이라곤 못 받는 한국의 수습獸習기자들은 매일 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신이 맡은 구역의 경찰서와 지구대, 병원, 지하철, 시민단체 등을 돌아 팩트를 수집한다. 그렇게 모은 팩트를 정해진 시간마다 '1진'에게 보고하는데, 기삿거리가 없거나 취재가 부실해 팩트가 부족하거나 팩트가 서로 모순되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러면 다시 현장으로 가든 담당 경찰에게 가든 하여간 놓친 팩트를 찾아야 하는데, 그걸 찾아야 밥도 먹을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다.

그러니 권모 등 얄팍한 수습은 때로는 밥과 잠에 눈이 멀어서, 때로는 1진의 불호령이 듣고 싶지 않아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걸 취재한 척 내놓았던 것이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이를테면 절도 사건 피의자 김모씨의 나이를 물으면 대충 32살이라고 둘러댄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나름의 변명도 있었다: "별로 중요한 사건도 아닌데 뭐 어때. 이런 사건은 '얘기가 안 되'니 기사로도 안 나갈 게 분명해." 그러니 수습이 당최 수습 못할 짓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은 눈 밝은 선배들에게 발각됐고, 반성문을 썼고, 그날부터 회식 때마다 '허위보고 하는 사람은 각오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방송에서 맛집 하나를 소개하는 시간은 아마 길어야 10분, 짧으면 1분이나 혹은 30초 정도일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금새 가버리는 시간 10분. 눈을 몇 번 깜박이기만 해도 지나는 30초. 분명 별것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맛집 하나가 방송에 나온다고 누가 큰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콘셉트를 잡아 두 개의 식당을 찾았는데 나머지 하나가 나타나지 않을 때 방송 작가가 느끼는 답답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쌓였을 때 어떻게 됐나. (TV가 뱀보다 무서운 것은 탐스러운 선악과를 보여주고 따먹으라고 하면서도, 결코 그걸 손에 잡히는 곳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 받고 맛집 하나 광고해줬을 뿐인데, 이제 우리는 오르가슴 없이 사정만 하는 운명인 양 맛이라는 쾌락을 포기해야만 한다. 몇성급 호텔 요리사가 만드는, 듣도보도 못한 요리가 무려 '한식 세계화'를 위한 무기가 된다. 보이는 재료란 재료는 모두 흘레붙이지만, 노새처럼 든든한 음식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는 사이 백 사람의 입맛은 미원과 다시다로 평준화해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TV 맛집'의 선정적인 모양새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것이 진짜 맛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맛있고 싶은' 것뿐이다. 'TV 맛집'의 음식이 진짜 맛있는가가 조금이라도 중요했다면, 이런 카르텔이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이제 사람들은 "맛있다" "괜찮다" 대신 "맛있는 것 같다"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한다.

다시 재미 없는 저널리즘 이야기로 돌아가자: 최근스티븐 워드Stephen Ward의 글 '소셜미디어 시대, 객관성, 저널리즘 윤리를 다시 생각하며 Rethinking Journalism Ethics, Objectivity in the Age of Social Media'를 소개한 몽양부활 님의 글 '소셜미디어 시대, 객관성 설 자리 잃다'를 읽으며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객관성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데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부당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 딴지일보가 해킹당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해킹 이후 딴지일보 측이 대문에 내건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고 싶습니다"라는 문구는 무척 매력적으로 재미있으며, 팩트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표현대로) '소설'을 늘어놓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매우 훌륭한 방송이지만, 그러나 그 어떤 논평도 팩트가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때로 딴지일보를 칭찬하면서 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알레고리는 재미가 없는 것이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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